한라산 정상, 해발 1,950m에 자리한 백록담의 물은 청정과 신비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사람 발길도, 외부 흔적도 쉽게 닿지 않는 공간. 그래서 백록담은 더욱 신비로운 장소로 인식돼 왔다. 그렇지만 최근 이 신비로운 물의 정체를 밝힌 연구 결과가 제주대학교 학부생들의 손으로 이뤄져 주목받고 있다.
제주대 학부생이 밝혀낸 백록담 물의 진짜 모습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과 안소현(4학년)·안정아(4학년)·신보라(3학년)·김연우(2학년) 등 학부생 4명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반 미생물 군집(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통해 백록담 물의 미생물 생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백록담의 물은 단순히 ‘맑고 비어 있는 물’이 아니라 극한 환경 속에서 자연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선택한 생명 만이 공존하는 독자 생태계임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백록담 물에서 ‘선택된 미생물’ 확인
분석 결과 백록담 물에서는 극히 일부 미생물 만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구조가 나타났다. 즉 진균 분석에서는 ‘Trichosporon debeurmannianum’이 전체의 87.1%를 차지, 가장 우세한 종으로 확인했다. 고세균 분석에서는 ‘Methanosarcina flavescens’가 48.4%로 제일 높은 비율을 보이며 뚜렷한 메탄 생성 고세균 군집을 관찰할 수 있었다.
관련해 이 연구를 지도한 현창구 교수는 “이는 백록담 물속 일부 공간에 산소가 제한된 미세 환경이 형성돼 있으며 지구 초기 환경을 연상케 하는 원시 생명 활동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유산균과 아카멘시아까지…예상 밖의 발견
특히 박테리아 분석에서는 △ Ligilactobacillus animalis(15.4%) △ Limosilactobacillus reuteri(4.1%) △ Lactobacillus gasseri(3.6%) △ Lactococcus lactis(2.7%) 등이 나타났다.
이와 함께 장 건강 연구의 핵심 지표 미생물이자 차세대 프로바이오틱스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Akkermansia muciniphila’도 0.3% 수준으로, 비록 소량이지만 명확히 검출됐다.
이번 분석은 백록담의 물이 주변 생태계와 분리돼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고산 식생과 토양, 그리고 한라산에 서식하는 노루 등 야생동물과 느슨하지만 생태 연결의 지속에서 형성된 결과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는 백록담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 내부에서 균형을 이루며 유지하고 있는 ‘닫힌 순환계에 가까운 공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청정수’의 새로운 정의
이번 분석은 기존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록담의 물은 생명이 없는 물이 아니라 자연이 수천 년에 걸쳐 걸러낸 생명만 남아 있는 물이라는 사실이다.
극한 환경과 고립된 공간, 느린 생태 순환 속에서 선택된 미생물 만이 살아남아 형성된 이 미생물 지도는 백록담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과학·생태·미래 바이오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공간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학생들이 직접 설계하고 해석한 연구 성과
이번 성과는 연구 결과뿐 아니라 연구 과정 자체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학부생 안소현·안정아·신보라·김연우 씨 등 4명은 실험 설계부터 시료 처리, 데이터 분석까지 연구 전 과정을 주도적으로 수행했다.
이는 제주대학교 RISE 사업의 핵심 교육 모델이라고 할 ‘넥스트젠 코스메틱스 트랙’을 대표하는 사례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학부생 중심의 연구가 단순한 교육 실습을 넘어 세계 수준의 학술·산업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결과라는 것.
‘청정 제주’를 넘어 글로벌 K-뷰티 원료로
현창구 화학코스메틱스학과 교수(지도교수)는 “현재 백록담 물에서 다양한 유용 미생물을 실제로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엑소좀(Exosome)·PDRN·프로바이오틱스·포스트바이오틱스·르로바이오틱스 등 차세대 화장품 원료 개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단순히 청정 제주에 국한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K-뷰티 원료로서의 가치를 제고하는데도 역점을 둘 방침”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