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물고기들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한 물고기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빠르고 거세게, 다른 물고기들이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헤엄법으로. 그 물고기는 역류의 에너지로 초격차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그 힘으로 다른 물고기들의 욕망을 건드리고, 결핍을 채우며 강을 평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물고기가 움직이면 강 전체가 긴장한다. 그 물고기의 이름은 ‘K뷰티’다.
신간 「화장품은 한국인 1등입니다」(박종대 메리츠증권 연구원 지음)는 “K뷰티, 이제 글로벌이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한국 화장품산업의 글로벌 모멘텀은 지금 시작이라는 말이다. K컬처와 우수한 제조·유통 인프라가 이를 뒷받침한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화장품을 만들어 글로벌 마켓에 팔 수 있는 시대다. K뷰티는 습관이 된 혁신성, 고스펙 젊은 벤처가업가들, 세계에서 제일 깐깐한 소비자를 무기 삼아 세계를 향해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K컬처‧코로나19‧미국‧일본‧아마존‧큐텐‧틱톡… 온 우주의 기운이 K뷰티로 향했다. 이 책은 질문한다 ‘운을 추세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는가?’
저자는 K뷰티에 제3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원드랜드숍(제1의물결), 중국 특수(제2의물결)을 거쳐 세 번째 요인은 미국이다.
미국 1등이 세계 1등이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제3의 물결 위에 있다. 이번에는 글로벌이다. 2003년 이후 원브랜드숍 시장, 2014년 중국 모멘텀에 이어 2023년 이후 미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로 수출 증가세가 가파르다. 202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화장품 수입 1위 국가가 한국이 되었고, 대미국 수출보다 중동/유럽 등 기타 지역으로 수출 증가폭은 더 크게 나오고 있다. 중국 모멘텀과 달리 용기부터 ODM, 유통과 무역까지 제대로 된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나가고 있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최고의 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며, 시장 확장 여력을 높인다.”
미국은 세계 1위 화장품시장을 보유했다. 글로벌 경제·문화의 중심국이다. 미국에서 잘 팔린 제품은 유럽·중동·북아프리카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이커머스·SNS·MZ세대·셀럽 브랜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K뷰티에 볕이 들었다. 아마존은 연료 역할을 했다.
아마존이 꼽은 K뷰티의 강점은 △ 카테고리 다각화를 통한 저변 확대(메디큐브 에이지알 뷰티 디바이스) △ 끊임 없는 제품 혁신 및 다양한 원료 중심 셀렉션(시카리들, 콜라겐마스크) △ 새로운 시장과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힘(토너패드, 아이밤, 립버터) △ 원료·성분 활용한 상품과 라인업 개발을 통한 브랜딩(달팽이, 트러플 쌀) △ 소셜미디어 통한 브랜딩(매디힐 토너패드-틱톡) 등이다.
미국 화장품의 46%는 색조가 차지한다. 중저가 기초는 비어있는 시장이다. 코로나19 이후 기능성 스킨케어 제품을 온라인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사려는 수요가 늘었다. K-인디브랜드들이 이 시장을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가성비 높은 혁신 제품에 미국 MZ들이 지갑을 열었다.
서양식 스킨케어는 강한 성분·기능의 맥스멈 스트렝스(Maximum Strangth)를 추구한다. 이와 달리 한국식 스킨케어는 순한 피부장벽 보호와 사전관리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 코스알엑스와 조선미녀는 이 흐름을 만들고 주도권을 잡은 대표 브랜드다.
이 책은 미국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의 성공요인을 ① 한류를 기반으로 ② 미국 화장품산업 구조의 빈틈인 중저가 기초 카테고리를 ③ 틱톡(마케팅)과 아마존(유통)을 활용해 판매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日 ‘잃어버린 30년’ 사라진 중저가 색조
일본 화장품시장은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일본의 색조시장 비중은 20%로 세계 평균 29%에 비해 낮다. 일본 메이저 브랜드는 중저가 색조화장품을 외면했다. 구매력 높은 중장년층과 수출용 프리미엄 기초화장품에만 집중했다. .
색조의 주 소비층은 MZ세대지만 ‘잃어버린 30년’으로 인해 구매력이 낮은 상황이다. 이들은 ‘쁘띠프라’(저렴한 가격) 제품을 선호하고 듀프(복제품) 소비를 즐긴다.
한국 인디브랜드들은 중저가 색조화장품을 들고 일본 온라인시장을 두드렸다. 이커머스 확대와 SNS의 보편화로 K-인디브랜드에 힘이 실렸다. 다양한 제품 수, 새로운 성분·제형·기능, 빠른 리뉴얼 주기 등은 일본에 ‘없던’ 것으로 평가받았다. 일본에 비해 10년 앞선 ODM 역량도 든든한 자산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2024년 일본의 화장품 수입국 1위로 올라섰다.
‘게으르고’ ‘힘 세며’ ‘믿을 수 없는’ 올리브영
‘올리브영 MD는 더 이상 애써 신규 브랜드를 찾지 않는다. 줄 서는 벤더 감당하기 벅차다.’ ‘올리브영의 힘이 너무 세졌다.’ ‘코덕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책에서는 경쟁자 없는 1등으로 올라선 올리브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룬다. 올리브영이 강조하는 ‘인디 브랜드 등용문’ 역할이 퇴색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올리브영 매장은 실적 가시성 높은 대형 브랜드가 채우고 있고, 신규 인디 브랜드의 입점장벽이 높으며, 신제품을 찾기 힘들고, 가격은 비싸다는 것이다. 신제품은 인스타그램 광고나 화장룸 유튜버, 지그재그나 무신사 뷰티 같은 온라인몰에서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올리브영 세일가격이 쿠팡 등보다 높아 ‘올리브영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꿀팁’이 공유되고 있다. 클렌징·시큰케어 등 반복구매 제품은 쿠팡에서 사고, 급할 때만 올리브영 ‘오늘드림’을 이용한다는 소비자 목소리도 소개했다.
올리브영 랭킹에 대한 신뢰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제품력에 의한 순위라기 보다 자본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기대서 ‘만들어낸’ 등수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다.
“코덕들은 이미 올리브영을 떠났다” “아마존이나 큐텐 MD들은 더 이상 올리브영 랭킹을 참고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글로벌 유통업체도 올리브영 랭킹 이외의 제품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보고다.
올리브영 앞에 줄선 인디브랜드들의 병목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마이너리그’ 인디브랜드는 각자도생 시대를 맞았다. 큐텐·아마존 등 해외 이커머스 플랫폼과 직거래를 트는 사례도 늘고 있다.
K뷰티의 숙제 : 미국·일본 오프라인
“한국 화장품 수출의 핵심은 현재 일본과 미국이다. 대일본, 대미국 수출의 지속적인 증가는 한국 화장품 산업의 성장과 투자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그만큼 일본과 미국 시장의 특징과 향후 방향성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유통 시장의 특징은 높 은 오프라인 비중에 있다. 한국 화장품이 온라인에서 성공했지만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중심 채널인 오프라인으로 진입해야 한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카테고리 측면에서 일본은 기초가 메인이다. 반대로 미국은 상대적으로 색조 비중이 대단히 크다. 한국 화장품은 채널 측면에서나, 카테 고리 측면에서나 지난 3년 동안 틈새시장에서 성공하면서 위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빈틈이었던 만큼 그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이제 필연적으로 메인 시장에 문을 두드려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오프라인, 일본의 중저가 기초, 미국의 중저가 색조 카테고리가 그것이다. 핵심 시장인 만큼 기존 로컬 브랜드의 위상은 높 고 견고할 것이다. 유통 업체들은 보수적일 것이다. 한국 화장품을 매 대에 들이려면 다른 걸 빼야 하는데 그 의사결정이 빠를 것 같지도 않 다. 이들 채널의 주 고객은 장년층이다. 이들의 구매 패턴의 변화는 10~20대들의 그것보다 훨씬 드릴 것이다. 그래서 이전 온라인에서 판매할 때보다 매출 증가가 더딜 수 있다. 하지만 그 성장의 중장기 여력은 생각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이 책에선 한국 화장품의 가장 큰 특징을 가성비와 혁신성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새로운 제형을 제시하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시장 점유율과 사업 영역을 넓히는 전략은 K뷰티만이 가능하다.
화장품은 한국이 1등이다. 지금, 한국 화장품 산업의 글로벌 모멘텀이 시작됐다.